미국 팝 아티스트의 거장 앤디 워홀 작품들을 볼 때마다 정말?
본명이 앤드루 워홀라 주니어(Andrew Worhola Jr.)인 앤디 워홀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슬로바키아(체코슬로바키아)계 아들로 태어났다. 그 후 카네기 멜론 대학에 진학해 광고 예술을 배워 1949년에 졸업을 하고 1952년에는 신문광고 미술부문의 아트 디렉터즈 클럽상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들은 그 당시 조금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양식을 띄고 있었으나, 가장 높은 가격을 기록한 워홀의 그림은 1963년에 제작된 캔버스로 1억 달러에 거래된 《여덟 명의 엘비스》(Eight Evises)라는 제목의 그림이라고 한다. 그의 작품세계는 대부분 ‘미국의 물질문화’와 연관되어 있다. 그는 작품에 돈, 달러 기호, 식품, 유명인, 신문 스크랩 등을 그렸다. 이런 주제들은 미국 문화의 가치를 의미했다. (위키백과 바로가기)
캠벨 스프 캔들을 그린 작품이나 바나나 그림 그리고 마릴린 먼로 그림등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앤디 워홀의 작품들이고, 영화도 많이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있으나 거의 대부분이 실험영화기 때문에, 일반 대중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기사 바로가기) 그가 찍은 영화들로는 자신이 먹는 모습을 찍거나, 누군가의 자는 모습을 찍고, 동성애 코드가 많이 들어간 다수 작품들이 있다. 여러 여자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녔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앤디 워홀은 동성애자였고, 평생 동정이였다고 주장했다. 현재는 그의 출생지 피츠버그에는 앤디 워홀 미술관과 앤디 워홀 다리가 있다.
유독 우리나라에서 앤디 워홀이 한 말로 알려진 이 어구
'Be famous, and they will give you tremendous applause when you are actually pooping'
는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말로 알려져 있다. 앤디 워홀이 비록 굶주리지 않는 예술가로서 한 시대를 살았던 것은 맞지만, 유명해지기 위해서 치열하게 사투를 벌이지도 않았고, 또 그것을 남용하지도 않았던 사람이다. 오히려 매우 겸손한 사람이였으며, 부모님들에게 평생을 걸쳐 효도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앤디 워홀이 말했던 것은 총상을 맞고 만든 'I shot andy warhol'영화를 만들고 나서 미래엔 누구나 15분 내외로 유명해질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허핑턴포스트 코리아에서 소개했던 앤디 워홀 작품들 중 하나를 소개한다.
Andy Warhol's "Lonesome Cowboys" wrestling sc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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